P21은 2026년의 첫 전시로 여성 작가 9인이 참여하는 그룹전 Unapologetic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부터 국제적으로 주목받아 온 작가들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동시대 여성의 신체와 감정, 노동과 정체성을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탐구한다. 참여 작가들은 개인의 경험과 사적인 서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감각과 유희, 자기 몰두의 영역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드러낸다.
여성에게 요구되어 온 ‘좋은(good)’ 도덕적 주체의 태도는 자기 검열을 내면화하게 만들었고, 즐거움과 욕망, 과도한 감정의 표현은 오랫동안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다. 전시에 소개되는 작업들은 이러한 규범적 통제를 넘어, 그간 억눌려 왔던 여성의 자기애적 즐김과 감정의 과잉, 반복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서 여성은 더 이상 설명되거나 정당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족의 근원으로 삼는 존재로 등장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여성적 존재를 도덕과 생산성의 기준으로 환원하지 않고, 살과 감각을 지닌 인간 동물로 상기시킨다. 이들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자기 몰두와 자기 긍정은 삶을 온전히 긍정하기 위한 감각적 실천으로 기능하며, 쾌락과 자유가 존재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감각임을 환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간의 구성과 동선을 따라 점진적으로 펼쳐진다. 전시 공간의 외부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한껏 격앙된 군상이 관객을 맞이한다. 분노와 긴장, 위협의 정서를 날카로우면서도 아이러니한 이미지로 전환해 온 신민의 작업으로, 공간에 들어서기 전부터 전시의 기조를 암시한다. 요구된 친절과 연대의 몸짓은 과장된 형상과 비틀린 신체를 통해 그 이면의 냉소와 피로가 드러난다. 입구로 향하는 동선에서는 또 다른 조각의 뒷모습을 마주치게 하며 관람의 시작을 하나의 장면처럼 구성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표면을 타고 흐르는 재료의 흔적을 통해 가라앉은 감정을 응축하는 김명주의 두상 조각이 먼저 시선을 붙잡고, 한쪽 벽면을 따라 회화와 입체 작업들이 밀도 있게 이어진다. 모니카 김 가르자의 화면 속 인물들은 책을 읽거나 음료를 마시며 무위의 상태에 머문다. 느슨한 태도와 거친 화면 표면은 시각적 긴장을 풀어내며, 환경에 완전히 잠긴 신체의 감각을 전달하고,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소피아 미촐라의 회화로 이어진다.
반복과 몰입을 통해 내면을 가시화하는 작업들도 이어진다. 김나는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얼굴 이미지를 통해 특정 인물을 지시하기보다 지속적인 상상 속에서만 성립하는 형상의 흐름을 구축한다. 우쟈루 역시 즉흥성과 자동성에 기반한 회화 행위를 통해 통제를 느슨하게 풀어내며, 그리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해방의 경로로 삼는다. 또한 멀리서도 강렬하게 마주하는 이은새의 작품에서는 통제 이전의 생명력이 화면 밖으로 넘쳐나며, 서안나는 런던에서 포착한 장면들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며 도시를 과장과 은유가 교차하는 무대로 전환한다. 공간의 반대편에서는 안민정의 작업이 벽면을 따라 전개되며, 출산 이후의 산후조리원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기호와 구조로 재편해 개인의 기억을 분석적 언어로 치환한다.
Unapologetic은 서로 다른 매체와 언어를 통해 여성의 경험과 신체, 감정과 노동, 정체성이 형성되고 규정되는 방식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는 여성에게 부과된 도덕적 기준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기 검열을 벗어나, 주어진 생을 제대로 즐기고 원할 권리를 다시 묻는다. 이는 여성적 주체가 타인의 승인 없이도 자신의 감각과 욕망을 통해 존재할 수 있음을 선언하며, 삶을 과도하게, 그러나 풍부하게 긍정하라는 하나의 제안으로 다가온다.
참여작가: 안민정, 모니카 김 가르자, 김명주, 김나, 이은새, 소피아 미촐라, 서안나, 신민, 우쟈루
출처: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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