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렬 개인전: 그어디쯤 Still Lingering

씨알콜렉티브

2026년 1월 20일 ~ 2026년 2월 28일

윤상렬의 작업은 시간의 축적 위에 반복과 질서, 선과 구조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평면을 드러내는 과정과 형식에 주목해 왔다. 그의 화면에서 반복은 극복이나 성취를 향한 수행의 과정이 아니라,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끝났어야 할 형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를 드러낸다. 2007년 첫 개인전 《두려움》 이후 이러한 수행적 언어와 신체성은 제거되거나 승화해야 할 대상이나 목표가 아닌, 수행과 완성이 유예된 이후에도 형식이 계속해서 작동하는 조건, 사라지지 않은 구조와 잔여이고, 끝내 그 어디쯤에 남아 있는 감정의 잔존을 응시한다. 여기서 ‘유예’는 완성을 미루는 시간적 태도를, ‘잔존’은 그 유예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형식을 지탱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윤상렬에게 반복과 질서가 결론을 연기하는 구조적 태도에 가깝다면, 이를 실천하는 선은 언제나 정교하게 배열되고, 그 정교함은 닫힌 체계의 구조로 (보이지만) 단순하게 귀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완전성 (완전성)은 의도된 결핍이 아니라, 형식이 스스로를 지속시키는 조건으로 ‘(완성되어 보이지만) 완성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동을 멈추지 않는 상태’를 전시의 중심에 놓는다. 작가는 작가주의나 특정 스타일로 덧씌워진 이미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작업이 작동할 수 있는 형식과 잔여 시스템을 설계해야 했다. 이때 행위는 수행의 강도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수행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초기 설정으로 작동한다. 그는 신체와 손, 최적의 매체를 찾아 그것이 실패할 확률을 최소화하고,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감각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조용히 기록해 왔다. 선을 긋고, 닦고, 깎으며, 쓸어내리는 반복적 행위는 감정의 정화나 치유를 지양하기보다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생의 리듬을 치밀하게 탐색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브제-평면, 입체 드로잉 같은 구조적 평면을 넘어 구조적 설치작업으로 확장된다. 종이 위 샤프펜 0.3~0.7mm의 흑연으로 노동집약적 선 긋기, 첨단디지털 프린팅을 통한 정밀한 선 새기기, 그리고 여러 겹의 층위를 드러내는 구조적 평면과 구조물로 확장된 형식들은 감성과 이성, 손과 시스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이중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겹과 층은 기억의 집적이자 시간의 두께로 작동하며, 화면은 단일한 의미를 향해 수렴하지 않고 미묘한 차이와 편차를 축적한다. 그의 선은 계산된 도형이 아니라 불안을 기록하는 신체의 궤적이며, 구조물은 기능적 완결체라기보다 감정의 균형을 임시로 지탱하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이 구분은 이분법적 대립으로 수렴되기보다는 어떤 ‘중간 어디쯤의 상태’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형식만이 유지된다.

특히 그의 신작 <그어디쯤> 시리즈는 최첨단 정밀기술로 계산된 격자무늬 스크래치를 낸 도강판(LGP, Light Guide Plate) 위에 노동집약적 문지르기 방식으로 흔적 라인을 각도와 수치 개념을 더해 심화시키는 입체 드로잉으로, “‘그리지 않지만 쓸고 닦고 정리하는데 나타나고 사라진다’는 정의를 내린 이전 작업의 연결선상의 작업”(작가노트에서)이다. 또 다른 신작 <깊고넓고좁고높고>는 외형상 정글짐 같은 구조적 형태를 띠고 있으나, 단순한 조형적 구조물로 환원되기보다는 평면과 입체, 구조와 표면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교란하는 상태로 제시된다. 윤상렬은 오랫동안 ‘구조적 평면이자 평면적 구조가 되는 상태’를 구상해 왔으며, <깊고넓고좁고높고>는 그 사유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구조는 더 이상 평면을 지지하기 위한 외부의 틀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평면적 조건으로 작동한다.

<깊고넓고좁고높고>의 제작 과정은 수행의 흔적을 드러내기보다는, 수행 이후에도 형식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는 데 집중한다. 작가는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실험을 통해, 얇은 목재가 어떠한 환경 상태에서도 뒤틀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5mm라는 오차 범위’ 안에서 구조를 설계했다. 이음과 쌓음의 과정에서 통제와 균형은 서로를 억제하기보다 보완하며, 구조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 채 서로를 지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의 강도나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형식이 더 이상 지속적인 개입을 요구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전시장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된다. 씨알콜렉티브 전시장 내 설치 장소의 빛의 변화, 바닥의 평평함, 층고와 벽, 그리고 관람자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깊이는 모두 작업상의 관계로 고려된다. 구조물은 빛을 반사하거나 차단하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자를 머금는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은 작품을 완성으로 이끄는 외부 조건이 아니라, 완성이 계속해서 유예되는 상황을 지속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를 위해 유사 환경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시뮬레이션이 병행되었으며, 작업은 특정한 순간의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유지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이 지점에서 <깊고넓고좁고높고>는 윤상렬 작업 전반을 관통해 온 ‘수행 이후의 형식’이라는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유지되는 구조물은 더 이상 손의 반복적 개입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괴되지 않는다. 수행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형식의 내부로 위임된다. 구조는 작가의 행위를 대체하며, 통제와 균형은 스스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 《그어디쯤 Still Lingering》은 이러한 태도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 어딘가’라는 제목은 명확한 위치나 도착점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와 탈주체 사이, 완벽과 실패 사이, 질서와 혼란 사이, 제도와 감정 사이에 놓인 중간 어디 쯤에 자리하며,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를 가리킨다.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고,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그 안에서 작업은 중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시는 도착하지 않음 자체를 하나의 윤리로 제안한다.

윤상렬의 화면은 표면적으로는 미니멀리즘 이후의 언어를 연상시킨다. 반복되는 선, 투명한 층, 균질해 보이는 구조는 탈주체적 질서와 통제의 시스템을 암시한다. 균질해 보이는 선들은 외관상 완벽한 시스템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지만, 손끝의 떨림과 호흡의 불균형은 그 질서를 끝내 완성하지 않는다. 이 불완전성은 기술적 미숙이나 의도적 파괴라기보다, 제도와 작가주의적 완벽성이란 명령 속에서 작가가 감각적으로 견뎌온 감정의 흔적에 가깝다. 또한 레이어의 축적 속에서 발생하는 편차와 오차는 질서를 붕괴시키기보다는, 그 질서가 종결되지 못한 채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의 반복은 질서를 모방하면서 동시에 그 질서를 조금씩 마모시키며, 통제를 흉내 내되 그 내부에서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이는 신체적 수행과 과정의 가시화를 비판적 전략으로 삼았던 포스트 미니멀리즘이 하나의 미학적 규범으로 제도화된 이후, 그 수행을 반복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수행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 형식의 상태를 설계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결국 이번 전시의 지향점은 ‘수행 없는 형식’이다. 윤상렬의 관심은 더 이상 의미화하는 행위의 강도나 신체의 드러남에 있지 않다. 반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수행의 흔적이라기보다 조건 설정의 결과에 가깝다. 작가는 행위자가 아니라, 구조의 설계자로 위치를 이동한다. 손은 화면을 지배하지 않고, 시스템에 위임된다. 이때 작업은 신체적 수행을 통해 완성되지 않으며, 두려움과 제도적 압박을 견뎌온 증인의 자리에서 작동하며 오히려 수행이 불필요한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이 전시는 불안을 극복한 이후의 서사가 아니라, 사적 감정이 형식의 조건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극복을 유예한 채 지속되는 하나의 윤리적 형식을 제안한다. 윤상렬은 동시대 회화가 이 지점에서 여전히 감각과 태도의 문제로 남아 있음을 환기시킨다.

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참여작가: 윤상렬

출처: 씨알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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